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펄프 픽션(영화) (문단 편집) === [[1994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 훌륭한 작품성과는 별개로, 1994년 칸 [[황금종려상]] 수상 때는 당시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레드]][* 삼색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세 가지 색: 블루]]는 베니스영화제 최우수작품상 [[세 가지 색: 화이트]]는 베를린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감독의 [[올리브 나무 사이로]][* 지그재그 3부작의 완결작으로 1부:내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2부: 그리고 삶은 계속 된다. 올리브 나무 사이로는 3부에 해당한다. [[카예 뒤 시네마]] 선정 1995년 베스트영화 9위]는 물론, [[양덕창]] 감독의 <독립시대>[* 1990년대 최고 걸작으로도 꼽히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만든 거장이다.], [[아톰 에고이안]] 감독의 <엑조티카>[* 국제비평가상 수상작으로, 칸의 총아로, 영화가 입소문을 타면서, 3년 뒤에 국내 개봉도 하였다.], [[장예모]](인생),[* 장예모 마니아들은 "귀주이야기"와 "인생"을 최고작을 친다.] [[난니 모레티]] 감독의 <나의 즐거운 일기>[* 카예 뒤 시네마 선정 1994년 베스트 영화 2위.황금종려상 수상작 "아들의 방"으로 유명하다.], [[코엔 형제]] 등 후보작과 감독들의 경쟁이 치열했는데, 일부에서는 이 작품이 훌륭하긴 해도 황금종려상 수상감은 아니라는 일부의 주장이 있었다. 실제로 쿠엔틴 타라티노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기 위해 시상식 단상 위에 올라 갔을 때 영화제 시상식장에선 소란이 일기도 했다. 객석의 한 관객이 <펄프 픽션>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는건 웃기는 일이라며, 그 상은 키에슬로프스키[* 참고로 세 가지색 레드가 작품이 감독 유작이다.]의 <세가지 색: 레드>가 받아야 한다고 항의성으로 소리친것이다. 그 관객의 항의에 타란티노는 가운뎃 손가락을 날리며 맞대응했다. 당시 한국의 유력 영화지 '로드쇼'는 1994년 7월호에 수상 논란에 대한 기사를 실었다. 대략 칸에 각본상이 있다면 각본상은 받을 만한 영화라는 정도의 평이다. 더해서 수상 이면에는 1989년 수상작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1990년 수상작 [[광란의 사랑]], 1991년 수상작 [[바톤 핑크]][* 최우수 작품상, 감독상, 남우주연상을 몰아줘 논란이 되었다.]처럼 미국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칸의 제스쳐가 담기지 않았느냐는 주장도 있었다. 프랑스의 유력지 [[카예 뒤 시네마]]는 타란티노 수상 이후, 잡지의 분량 반을 <새로운 거장에 관한 존경과 흠모의 특집: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그 다음 작품 <[[체리 향기]]>로 1997년 황금종려상을 수상한다.]에게 경배를>이라는 기사로 채웠다. [[난니 모레티]][*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탈리아 거장 감독이다.]는 감독상 수상 후 공식 인터뷰에서 수상과 수상작에 관한 불만을 드러냈다. 1997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일 때는 <[[체리 향기]]>를 지지하였고, 1994년 칸 영화제에서 빈손으로 돌아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에게 황금종려상 수상의 영광을 받게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